6월 네 번째 수요일, the second letter from 윤혜 ✍️
올림픽을 앞둔 프랑스에서 되새기는 올림픽 정신.
대체 그게 뭘까. 아직도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 회의를 긍정으로 바꾼 윤혜의 경험과 데이비드 랭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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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불 하나가 뭐라고!
파리 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프랑스 곳곳이 준비로 분주해요. 지금은 올림픽 성화가 전국을 돌고 있습니다. 며칠 전 마침 저희 동네에도 와서 보고 왔어요. 한 시간 전쯤 가서 기다리는데, 치안 병력, 정부 인력, 스폰서사 홍보 인력 등 족히 백 대가 넘는 차와 수백 명의 인력이 지나갔습니다. 아니, 이 많은 인원이 전국을 돌다니… 처음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 대해 회의적이었거든요. 센 강에서 개막식을 하고, 각종 문화유산에서 경기를 치르는 등 (예를 들어 베르사유 궁에서 승마 경기를 엽니다.) 독특하고 아름답겠습니다만, 재정 확보나 거리 미화, 준비도 덜 된 것 같고 무엇보다 테러 걱정도 크고요. 두 달 동안 무려 11,000명이 봉송하는 이번 성화도 꿈만 큰 세금 낭비라 생각했어요.
바다를 배경으로 프랑스의 수영선수 알랭 베르나르가 성화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1분 정도 될까요? 정말 찰나였어요. 그러다 사람들이 베르나르를 하나둘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재밌어서 처음에는 동영상을 찍다가 어느샌가 사람들과 같이 뛰게 되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달리는 것이었어요. 숨이 턱끝까지 찼지만 힘들지가 않고 오히려 너무 재밌어서 웃음이 실실 나왔습니다. 아이와 손잡고 달리는 엄마, 일흔 정도 되어보이는 할아버지, 자전거로 쫓아가는 10대들, 단체로 올림픽 옷을 입고 온 초등학생들… 다들 환호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그야말로 ‘막’ 뛰어갔어요. 그때 저는 아, 올림픽 정신이 이런 것일까, 싶었습니다. 고작 불 하나가 뭐라고! 하던 그 불을 따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1km를 뛰었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날을 특별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음, 이 순간이 수많은 이들의 뇌리에 평생 남는다면, 이 세금도 엄청난 낭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포츠와 음악은 화합의 도구로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연주/경주의 순간을 관중이 함께하죠. 올림픽 개폐막식 예술감독 토마 졸리는 몇 해 전 셰익스피어극을 24시간 올려 화제를 모았던 연출가인데요. “세상에 24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이야기’를 ‘같이 목격하는’ 곳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탄생한 연출이었죠. 센 강변에서 열리는 개막식도 그럴 겁니다.
올림픽 직전 오페라 바스티유에는 데이비드 랭의 ‘Crowd Out’이 올라갑니다. 랭은 인터넷 검색으로 나온 문장들을 모아 만든 오페라 ‘The Whisper Opera’ 등 독특한 작품을 선보여온 미국 작곡가입니다. ‘Crowd Out’은 랭이 아스널 FC 축구팀 관중들의 응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대규모 합창으로, 제목처럼 군중의 고함에 가깝지만 멜로디가 이곳저곳 스며들어 있습니다. 스포츠계에서 음악 작품을 응원가 등으로 가져가는 건 봤어도 스포츠 현장을 음악으로 가져오는 건 재미난 시도네요. ‘함께 즐긴다’는 중심 가치가 같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Crowd Out’의 짧은 편집본을 공유합니다. 어쩌다 보니 혜선 선배도, 저도 합창을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호경 선배의 답장에서 또다른 장르의 더욱 흥미로운 실험들을 기대해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