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두 번째 수요일, the first letter from 혜선 ✍️
잔잔한 일상에 영감을 주는 산뜻한 편지 한 통.
음악에 가상의 개념이 정착하기 전
흥미로운 실험을 했던 에릭 휘태커의 이야기 속으로.
🎙️
가상의 세계에서 노래하네
안녕, 오늘도 분주했던 하루가 끝나가요. 아이가 아픈 탓에 어린이집을 며칠째 못 보내고 있네요. 온종일 아이와 둘이 집에만 있다가, 저녁 즈음에 퇴근한 남편이 아파트 분수대가 작동된다고 해서 잠시 나갔다 왔어요. 인천으로 이사 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동네 친구는 없고, 구축 아파트여서 그런지 단지 내에 아이 키우는 이웃도 보이지 않아요. 아직도 전 이 동네가 좀 쓸쓸해요.
적적할 때마다 카톡으로, 혹은 화상 통화로 말동무가 되어주는 호경 선배와 윤혜 씨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심지어 윤혜 씨는 프랑스에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우리는 실시간 대화를 나누죠! 다니는 회사도 재택근무여서 동료들 얼굴을 보지 않고도 사회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실제로 부대끼며 눈을 마주치고 교감하는 사람은 남편과 아이가 전부인 것 같네요.
이번 편지 주제를 ‘심각하지 않은 실험’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바로 생각난 아티스트는 에릭 휘태커(Eric Whitacre)였어요. 그가 기획한 가상 합창단(Virtual Choir)이 팬데믹 당시 다시금 화제가 되면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곡가이자 지휘자이죠. 저 역시 에릭 휘태커를 알게 된 건 코로나 때였어요. 그런데 그가 2009년에 처음 가상 합창단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놀랍지 않나요? 스마트폰도 없었던 때잖아요! 가상으로 뭔가를 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을 때니까.
그 가상 합창단이 인종, 나이, 종교를 넘어 노래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목표라지만 초창기에도 그랬을까요? 처음에 휘태커는 자신이 작곡한 ‘Lux Aurumque(빛과 금)’ 악보를 웹상에 무료로 배포하고, 지휘하는 동영상을 올렸다고 해요. 그걸 보고 놀랍게도 사람들이 각각 노래하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거죠. 호기심으로 시작한 작업에 시간이 더해지며, 어느새 이 프로젝트는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거예요.
저는 합창을 좋아해요. 듣는 것도 좋아하는데, 부르는 게 더 좋아요. 초등학교 때도 합창단을 했고, 고등학교 때도 여고 합창단 소속이었고, 대학 때도 합창 중앙 동아리를 했을 정도예요. 의지와 다르게 노래는 못 불러요. 지독한 고음 불가여서 늘 알토를 맡았죠. 음악을 듣기만 하는 건 절 더 고립시키는 것 같아요. 휘태커 가상 합창단의 다음 음원이 올라온다면 귀 기울여 보세요. 혹시 제 목소리가 있을 수도! 역시, 예술은 감상할 때보다 참여할 때가 더 즐거운 것 같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