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두 번째 수요일, the third letter from 호경 ✍️
진지해서 귀엽고, 황당하지만 경쾌한 아이의 일상을 바라보며
더욱 풍부하게 상상하게 되는 라헨만의 모음곡 '어린이 놀이'
다채로운 음향에 귀기울이게 하는 그의 작곡법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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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지만 사랑스러운 라헨만의 피아노곡
아주 낮은 담장이 생겼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천천히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32개월이 된 이음과 엄마인 저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젖먹이 시절에는 거의 한 몸이었는데 말이죠. 아직은 이 벽이 아주아주 얕아서 넘나들며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요. 아이는 아주 작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제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합니다.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보도블록 사이를 끝없이 파고 다닌다거나, 삶은 달걀 껍데기를 식탁 아래 흩뿌리며 추상화를 그립니다. 한집에 사는 강아지 구미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요.
헬무트 라헨만의 ‘어린이 놀이’는 제가 이음이를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곱 곡으로 구성된 소품이에요. 우연히 듣기 시작해 다섯 번째 곡에서 웃음이 터져버렸습니다. ‘필터-그네’라는 제목으로, 중음역에서 클러스터를 같은 박자 간격으로 쾅, 쾅 연주한 후 각기 다른 음이 남아 울리도록 연주합니다. 이 반복하는 불협화음, 이 미세한 변주는 제가 매일 보는 장면, 그러니까 진지해서 귀여운, 황당해하며 웃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묘사하고 있어요.
두 번째 곡도 비슷합니다. 아주 좁은 음역 속에서 리듬적인 요소, 셈여림 변화 등은 전부 배제한 채 몇몇 화음을 반복해 때리는데요, 제목은 ‘얼음같이 찬 달빛 속의 구름’이라고 붙어 있습니다. 작곡가가 어떤 장면으로부터 상상한 곡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제 귀에는 그저 돌고래 같은 고음의 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해 외치면서 즐거워하는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이음이가 없었다면 이 곡 안에서 이러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부조화한 마찰이 주는 어둑한 인상들만 발견했을 것 같아요. 음악이란 정말이지 듣는 사람에 의해 완결되는 그런 예술인가 봅니다.
세 번째 곡의 제목은 ‘아키코’인데 작곡가 라헨만의 딸아이 이름이라고 해요. 짧은 세 번째 곡과 네 번째 곡 ‘살짝 취한 가짜 중국인’은 아키코 자체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 역할 놀이하는 아키코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오른손은 흑건만, 왼손은 백건만 연주하는 구조인데, 경쾌한 움직임이 비틀비틀 역동성을 가지고 확장돼요. 아키코는 아마 개구쟁이였던 것 같아요. 딱 두 개의 음만 사용하여 음향에 집중하게 하는 마지막 곡 ‘그림자 춤’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더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듯 느껴집니다.
라헨만은 이 곡에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합니다. 피아노가 잘하는 일, 그러니까 음의 높낮이나 구성, 전개를 설계해 음상을 그리게 하는 대신 ‘음향’에 집중하죠. 소리가 발생하는 방식, 다채로운 질감의 출현과 그 조화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곡법은 라헨만의 음악 세계 전체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소리에 대한 창조적인 탐색과 실험을 일상의 순간들에서도 떠올린 것 아닐까요.
라헨만이 연주하는 ‘어린이 놀이’ 앨범(2012, Mode Records)의 표지에서 라헨만은 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 소품만큼은 정말이지 나름대로 즐겁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며, 드뷔시의 ‘어린이 세계’와 슈만의 ‘어린이 정경’ 속 애틋한 행복에 대해 ‘아무튼, 클래식’에 썼는데요, 아이와 함께 지내고 보니 현실에 더 발 붙인 구체적인 행복을 떠올리게 됩니다. 라헨만의 이 작품을 통해서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윤혜 씨에게, 바쁜 직장생활과 육아로 별수 없이 거리를 두고 있는 혜선 씨에게 편지라도 쓸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크고 작은 담을 넘어 같은 음악이 흐릅니다. 고독하지 않게, 넉넉한 마음으로 이 여름을 보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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