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세 번째 수요일, the third letter from 혜선 ✍️
비발디 ‘사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그려낸
막스 리히터의 ‘사계’처럼
한 해 한 해 재해석되어가는 우리의 봄.
🍀
사실 저는 봄을 좋아했어요
사실 저는 봄을 좋아해요. 이유는 단순하죠. 제 생일이 3월 말이거든요. 태어난 날은 마냥 좋잖아요. 저는 이 계절을 바람이 살결을 스칠 때의 온도로 감각했어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낄 때 ‘춥다’가 아니라 ‘선선하다’라고 생각되면 어느덧 제가 봄의 길목에 서 있더라고요. 나에겐 괜히 설레는 이 계절이 누군가에겐 가라앉은 마음을 줬네요. 앞서 두 분의 편지를 읽으며 깨닫습니다.
얼마 전 남편과 조금 다퉜어요. 우리는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하는데, 운전하면서 대부분 팝을 들었죠. 남편은 한국어 가사가 있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전 음악이라면 사실 어떤 장르여도 상관없었기에 우리는 함께 팝을 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날은 남편이 제게 묻지도 않고 갑자기 운전 중에 부동산 유튜브를 트는 거예요! 음악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지만, 일정한 목소리 톤으로 부동산 얘기하는 걸 한 시간 동안 듣는 건 저에겐 큰 따분함이었기에 남편에게 껐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다음은 뭐, 대다수 부부들이 겪는 흔한 감정싸움이 이어졌고요.
결국 우리는 타협했어요. 만약 차를 타고 한 시간을 간다면, 30분씩 각자가 좋아하는 걸 서로에게 들려주자고 했죠. 그다음부터 우리는 차를 탈 때 절반은 부동산 유튜브, 절반은 클래식 음악을 들어요. 그런데 무작정 남편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자니, 가장 대중적인(?) 곡부터 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남편과 들었던 음악이 비발디 ‘사계’ 중 ‘봄’이었어요. 그런데 이 곡에 대해 또 설명하자니, 비발디, 바로크 음악, 고전 음악 등 얘기할 게 산더미더라고요. 남편 옆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저를 발견했죠. 힐끔 옆을 보니 남편도 퍽 즐거워 보여요. 그리고 남편도 부동산 얘기를 할 때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 톤이 좀 올라가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 집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네요.
남편에게 클래식 음악을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시대순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초봄에 바로크부터 시작해서 초여름을 앞둔 지금, 낭만시대까지 왔습니다. 이제 막스 리히터의 ‘사계’를 설명할 때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무더운 여름에는 남편에게 현대 음악, 리컴포즈드, 전자 음악, 미니멀리즘 등을 떠들고 있겠죠? 저는 요즘 남편에게 재건축 부동산에 대해 배우고 있어요. 뭐 듣다 보니 부동산 세계에도 조금 호기심이 생겨요.
호경 선배, 그리고 니코에겐 모질었던 이 계절이 이제 끝나려나 봐요. 대낮에 밖에 나가 눈을 감으면 ‘덥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움트는 꽃잎을 볼 때마다 울적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는 봄이 오면 그저 설레기보다는 나에겐 애틋한 두 사람이 먼저 걱정될 것 같아요. 이번 봄, 호경 선배는 좀 어떨까, 니코와 윤혜 씨는 아직 많이 슬프겠지… 이런 생각들이요. 막스 리히터는 비발디 ‘사계’를 재해석(Recomposed)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원곡의 75% 이상을 버렸다고 해요. 원곡의 짧은 모티브만 가져왔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발전하는 그만의 패턴이 잘 느껴지죠. 그러면서 이 곡은 원작보다 조금 더 쓸쓸하고 뭉클해졌어요. 호경 선배에게 봄은 이런 느낌일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