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 수요일, the second letter from 윤혜 ✍️
‘아이와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여는 두 번째 편지.
‘아이 친화적인 공연장’과 ‘음악 친화적인 아이’가
자라나기 위한 본질은 비슷하다는데.
🪑
결정은 저마다의 몫이겠지만
근래 아이와 클래식 음악 현장에 대해 글을 몇 개 썼습니다. 가장 최근 것은 공연장의 아이 친화적인 제도나 정책에 대해 소개하는 코너였어요. 예를 들어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 부모가 공연을 볼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서비스 같은 것들이요. 저는 해외 공연장의 사례를 맡았어요. 16개월 이하 아기만을 위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의 공연이나, 성인이 동반한 10세 이하의 아이에게 무료로 어린이 메뉴를 제공하는 바비컨 센터의 레스토랑, 로비 어디나 유아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 막연히 잘 돼 있겠지, 하고 짐작만 했던 어린이 정책들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해서 놀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공연장을 둘러본다 한들 부모만큼 꼼꼼하게 살필 수는 없었거든요. 몇 살 아이가 참여할 수 있는지, 음향이 자극적이진 않은지, 로비에 계단이나 턱이 많지는 않은지, 수유 공간이 마련돼 있는지, 이런 것들은 겪어보아야만 또렷이 각인되죠. (유아차를 가지고 다녀보니 도로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게되었다는 호경 선배의 말이 기억나네요.)
때문에 아이 친화적인 공연장의 정책이 나오려면 결국 결정권자가 육아의 고충에 공감하는 사람이어야만 하겠구나, 하고 더욱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오슬로 필이 운영하는 ‘유아차 콘서트Stroller Concert’는 영아를 데리고 마음껏 공연을 보러 오라는 취지의 클래식 음악 공연입니다. 티켓 한 장 가격으로 두 좌석이 제공됩니다. 좌석 하나에는 기저귀 가방을 두라는 배려죠. 아이와 외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챙겨야 하는지 아는 이가 기획한 공연임이 틀림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일반 클래식 공연에도 아이들을 꽤 데리고 옵니다. 여덟아홉 살쯤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세 시간짜리 오페라를 보기도 하고요. 얼마 전 니스 필하모닉 지휘자로 취임한 리오넬 브랑기에가 자신이 이곳 역사상 가장 어린 관객이라며, 생후 11일에 어머니가 자신을 데리고 왔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깜짝 놀랐어요. 엄마의 마음가짐도 대단하지만 신생아를 돌봐주는 극장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혜선 선배 편지를 읽으며 슬펐습니다. 아이들이 음악과 가깝게 지낸다고 꼭 음악을 한다는 법은 없는데, 다만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농담으로라도’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아무리 공연장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잘 갖춰 놓은들, 부모가 아이가 공연장과 가까워질 기회를 미리 앗아 버리면 소용이 없겠죠. 얼마 전 피아노 학원을 하는 지인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사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이 부쩍 많아졌다고요. 아이가 10살쯤 되면 학원을 그만두게 한대요. 아이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해서…. 아이들이 울면서 얘기한다고 합니다.
공연장 정책과 이 이야기의 본질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장의 결정권자가 어린이 친화적인 정책을 만들지 말지 결정하는 것처럼,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결정권자인 부모도 아이의 삶이 음악 친화적일지 아닐지 환경을 결정하겠죠. 모두 결정권자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겠구나. 그것이 공연장이든 아이든, 풍요로운 모습으로 자라나려면 이들이 책임감 있고 현명해야겠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