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에요. 아주 어릴 때는 아니었을 텐데요. 공연장에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갈 수 있었을 때니까요.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일 것 같네요. 우리 엄마는 저를 데리고 종종 클래식 공연장을 가셨어요. 딸이 좀 우아하게 크길 바라신 것 같은데, 그때 사실 저는 연주자들의 우아한(?) 드레스를 감상하기 바빴죠. 실내악 공연이었는데 네 연주자가 각자 다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게 제가 기억하는 첫 클래식 공연장 나들이였어요. 클래식 공연장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가 저는 좋았어요. 무대 위 연주자들의 기품 있는 애티튜드는 말괄량이 꼬마에겐 또 다른 세계였죠!
이제는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이제 막 6개월에 접어든 여자아이예요. 우리 아이가 딸인 걸 알았을 때 대부분 축하해 주었고, 몇몇 사람들은 별난 소리를 했어요. 일례로 “예쁘게만 키우면 되겠다.”라든지요. 지난 금요일에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는데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조기 교육에 대해 들으니 아찔해졌어요.“세 살까지는 한글을 끝내고, 네 살부터 영어를 시작해야 한다.” “요즘은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학을 한다.” 같은 내용이었어요. 아이가 잘하는 걸 발견하면 그게 무엇이든 지지해 주고 싶은데, 그러다가 다른 걸 놓쳐서 혹여나 뒤처지면 어떡하지 조바심이 들더라고요.
우리 아기는 비슷한 날짜에 태어난 다른 친구들보다 코어 힘이 좋아요. 어쩔 수 없는 ‘도치맘’인 저는 우리 아기가 발레를 하면 참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그런데 누가 제게 “예체능을 시키려는 생각이 든다는 건 네가 딸을 낳아서 그렇다.”라고 하더군요! 아이가 자라나는 방향성이 성별로 정해지는 시대가 21세기에도 여전하다는 건 좀 허탈하지 않나요…? “아들이었으면 음악을 한다고 할까 봐 무서워서 클래식은 들려주지도 않았을 거다.”라는 말은 가혹하고요.
우리 아기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클래식에 노출되어 있었어요. 엄마가 클래식 음악 관련 종사자여서가 아니라, 제가 처음 불러준 노래가 엘가 ‘사랑의 인사’ 멜로디에 제멋대로 가사를 붙인 거였거든요.
이 노래가 지금은 아기의 자장가가 되었어요. 아이도 아나 봐요. 잠이 와서 칭얼거릴 때 이 노래를 불러주면 눈이 스르륵 감겨요. 너무 귀여워요. 아들이었다고 제가 이 노래를 안 불러주진 않았겠죠?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듣는, 엄마의 노래. 음정이 틀려도, 가사가 엉망이어도, 나중에 아이가 커서 ‘사랑의 인사’를 어디선가 들을 때면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지기를 바라요. 그리고 남자여서, 여자여서, 음악을 좀 더 향유하고 좀 덜 향유해야 하는 세상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제가 대학 때 가장 많이 연주한 곡 중 하나예요. 음대 시절, 주말마다 결혼식장 연주 아르바이트를 다녔는데 그때마다 필수로 연주해야 했던 곡이거든요. ‘사랑의 인사’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늘 행복해 보였어요. 우리 아기도 그랬으면 좋겠기에 이 멜로디를 자꾸 저도 모르게 흥얼거렸나 봐요. 엘가는 9세 연상이었던 약혼녀 앨리스에게 이 곡을 바쳤어요. 주변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고 사랑을 쟁취한 엘가는 멋진 사람이에요. 그는 연인 앨리스에게 이 곡을 바치고 결혼을 이뤄냈어요. 이 곡이 오늘날에도 대단히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선율에 녹아 있는 엘가의 진심 때문이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