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 수요일, the first letter from 혜선 ✍️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는 변화의 시기.
고민 끝에 용기를 내, 난생 처음으로
들어온 일을 거절하게 된 혜선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
우리 조금 가볍게 새해를 시작해 볼까요?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와서 글을 쓰고 있어요. 혼자서 카페에 오는 것도, 그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도 요즘 저에겐 생경한 일입니다.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지난밤에는 응급실에 다녀왔어요. 아픈 아이를 두고 외출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독일에 사는 후배가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약속을 취소하기가 어려웠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 뒤 홀로 스타벅스에 들어왔어요.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면 잔상이 남아요. 그 사람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되새기곤 하죠. 저는 지금이 연말인지 연초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오늘 만난 두 사람은 빛나는 눈빛으로 내년, 내후년, 그리고 5년 뒤의 계획을 얘기했어요. 그 반짝이던 눈동자가 오늘은 유독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네요.
매년 이맘때 즈음이면 스타벅스 프리퀀시를 모으느라 바빴던 기억이 나요.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서요. 한 5년을 스타벅스 다이어리에다가 일정을 빼곡히 정리했죠. 스타벅스의 상술이라곤 하지만 저에겐 새해를 준비하는 소소한(프리퀀시를 모아야 하니 사실 꽤 비싼?) 의식이었어요. 음, 다이어리에 매번 일정을 쓰는 건 번거로운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참 뭐라고, 솔직히 말하면 그걸로 부지런한 나를 증명하려고 했던 것 같네요. 언제부터인지 가방이 무거운 게 싫다며, 그걸 핑계로 이제 더 이상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어요. 그러니 참 가볍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2023년은 바빴네요. 작년 말에 이직해 회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고, 뱃속에 아이를 품고 길러내 출산까지.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복직. 내 집 마련도 해서 이사했어요. 그리고 올해 저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들어오는 일을 거절했다는 거예요! 처음이에요. 누군가가 일을 제안했을 때 거절하면 왠지 다음 일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압박감이 있어서, 단 한 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거든요. 쓰기 싫은 글도 꾸역꾸역 써내며 마감을 지키곤 했죠. 올해는 정말 너무 바빠서 처음으로 일을 거절해 보았네요. 거절하기 전까지 수없이 고민하다가 애써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거절하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나요?
생각해 보면 회사 일을 하면서도, 하기 싫은 걸 하기 싫다고 얘기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못 해내면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요. 역량에 맞지 않는 일이더라도 늘 꾸역꾸역. 연말에 회사 일이 하나 들어왔는데 처음으로 “제 역량이 부족한 일이에요”라고 말했어요. 너무 홀가분했어요. ‘나를 능력 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다가 ‘뭐 그럼 어때?’ 싶었어요.
오늘 만난 후배들처럼 설레는 신년 계획은 없어요. 그냥 제 목표는 내년에는 조금 더 ‘잘’ 거절하면서 살아볼까 해요. 감당할 수 있는 것만 잘 감당해 내도 다행인 것 같아요. 이런 제가 조금 시든 것 같나요? 오히려 홀가분해요. 들고 다니기 싫었던 무거운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다 버려 버린 기분이랄까. 모쪼록 두 분 역시 가벼운 걸음으로 시작하는 새해가 되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