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세 번째 수요일, the first letter from 호경 ✍️
사람마다 유독 힘든 계절이 있다면
호경에게 그것은 봄일까
쏟아지는 벚꽃잎과 바흐가 호경에 가져다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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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서린 마음
바흐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 645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같은 제목의 칸타타 BWV 140을 바흐가 직접 오르간 버전으로 편곡한 곡인데요, 저는 머레이 페라이어의 연주(Sony, 2016)로 무한 반복하고 있습니다.
듣고 또 듣다 어쩐지 성에 안 차서(?) 악보를 찾아 나서기에 이릅니다(!). 제가 졸업한 대학원 도서관에는 칸타타 버전의 악보만 있기에 빌헬름 켐프가 편곡한 버전의 피아노 악보를 대한음악사에서 주문했어요. 그러고는 동네에 있는 시간당 사천 원짜리 피아노 연습실을 찾아내 사흘째 출석했습니다. 사 년 전쯤인가, 오래된 피아노를 처분하고 난 뒤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를 만졌어요. 실력은 엉망이지만 내 손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감각이 실로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주더라고요.
전부 머레이 페라이어 때문입니다. 페라이어가 연주하는 BWV 645가 나의 이 봄을 지배하고 있는 듯해요. 너무나 아름다운데요, 지독하게 아름다워서 슬픔이 따라옵니다.
모든 일은 상대적인가 봅니다. 일상의 지난함, 이를테면 밥벌이의 고단함, 외로움, 인내와 좌절 같은 것들이 평소에는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나고 또 사라졌다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햇살과 꽃잎 속에서는 더 큰 비극으로 발현되는 것 같아요. 계절이 선사하는 커다란 행복을 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별수가 없어요.
이유가 없지는 않아요. 쏟아지는 벚꽃잎은 내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왔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은 매년 사월의 열여섯 번째 날을 다 같이 애통해하죠. 여기에 원인 불명의 별수 없는 마음까지 더해지는 듯한 기분입니다.
빌헬름 켐프 버전의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를 첨부합니다. 머레이 페라이어가 연주한 버전과는 살짝 다른, 조금 더 경쾌한 편곡이에요. 봄의 울렁임 속에 그래도 밝음, 기쁨을 찾아 느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젠가 이 곡을 함께 연주하며 시간을 보내면 좋겠네요. 가볍고 상쾌한 연주이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