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세 번째 수요일, the second letter from 윤혜 ✍️
자신이 꿈꾸고 기대하는 마스터피스가 무엇인지 묻는
그런데 윤혜는 꿈을 꿔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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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무언가
고개를 들 때마다 하늘이 점점 깊어집니다. 얼마전부터 저는 한 회사에서 단기로 근무하고 있어요. 근 5년을 프리랜서로 글을 써온 제가 어떠한 틀에 들어가게 된 거죠. 몸이 먼 지라 원격으로 일하고, 시간은 개인적으로 쓰되 앱에 일한 시간과 휴식 시간을 표시합니다. 시간 체크 앱이라니. 처음에는 감시받는 느낌도 나고 제 생산성을 드러내는 느낌이라 기분이 영 이상했는데요. 쓰면 쓸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영감이 올 때 몰아 일하고 내키지 않으면 몇 시간 며칠씩 쉬곤 했거든요. 뭐, 글을 쓰는 사람한테 영감이 안 떠오르면 쉴 시간도 필요하지! 하며 비효율적인 패턴을 유지해왔던 제게 눈에 보이는 근무 그래프는 새로운 자극이 되었어요.
지난 편지에 담긴 그레타 거윅의 말을 읽으며 또 들쭉날쭉한 저의 근무 그래프를 보며, 그동안 오지 않는 영감에 책임을 미뤄놓고 쉬기만 한 저의 태도는 오만임을 깨달았습니다. 영감이 설령 떠오르지 않더라도 매일 일정 시간 그걸 기다리고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말이죠. 그러니까 거윅에게도 영감은 매일 찾아오지 않겠지만, 그 준비를 통해 언제 무엇이 오더라도 언제든 맞아들이고 흡수할 준비가 되었겠죠. 저는 아직 그 자발적인 루틴과 강도에 이르려면 멀었지만, 이번 기회로 무언가를 ‘꾸준하게’ 생산하는 기쁨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음, 제가 꿈꾸는 마스터피스는 무엇일까요. 질문을 받고 보니 저는 제 인생에서 남길 마스터피스를 꿈꾼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렴풋이 언제쯤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단 느낌 정도만 있네요. 어쩌면 호경 선배는 작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더욱 작품, piece라는 개념과 가까운지도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저는 같은 작품을 연주하는 이들을 수없이 보며, 그속에서 나만의 천재적인 무언가를 남긴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예나 지금이나 제 꿈은 예술적으로 사는 것인데요. 제게 예술적인 삶이란, 무언가 예술적인 걸작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예술에 둘러싸여 스스로 듣고 배우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에요. 배우는 기쁨이라니! 선배와 정말 똑같은 표현이네요. 그래서 우리의 삶 그 과정 자체가 움직이는 마스터피스가 아닐까, 하는 말에서 저도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저는 조금 게으르게 나아오긴 했지만, 움직이며 나아갑니다.
제게 마스터피스란 꼭 형태를 갖추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한 문장, 혹은 한 장면이나 음악의 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한 태도가 될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서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에서 세이모어가 말한 “국화꽃을 그리려면 국화꽃 한 송이를 10년 동안 보라. 스스로 국화꽃이 될 때까지.”라는 말은 제 인생에 크게 남아 있어요. (그 역시도 이 표현을 어느 수행자에게서 듣고 기억한 거였어요!) 그러니까 저는 늘 영감을 마스터피스처럼 여기며 살아왔네요. 혜선 선배에게 마스터피스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져요. 그리고 선배의 움직이는 마스터피스, 곧 삶은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