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 번째 수요일, the first letter from 호경 ✍️
'역작'이라 불리는 '바비'와 '오펜하이머'를 연달아 보고
그레타 거윅의 인터뷰를 읽으며 든 생각.
두 사람도 마스터피스를 꿈꾸고 기대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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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마스터피스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에 와 있습니다. 여름음악축제 기간이에요. 로비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는데 콘서트홀에서 트리오 반더러 연주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옆 체임버홀에서 하는 작은 현대음악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여름, 음악, 축제, 무대, 악기, 광장, 사람들… 이곳에 걸린 단어 중 뭐 하나 설레지 않는 말이 없네요. 분위기도 비슷합니다. 기분 좋게 소란스럽고, 시원해요.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의 여운을 안고 이곳에 왔습니다. 최근에 본 두 작품 모두 육아로 바쁘지만 않다면 한 번씩 더 극장에 찾아가 보고 싶을 만큼 좋았거든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인터뷰들을 찾아보고, '오펜하이머'의 장면들을 분석한 2차 창작물들을 유튜브로 찾아보며 근래 여러 밤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풍요의 나날이네요.
두 영화는 최고의 작품, 마스터피스, 역대급, 역작 같은 단어들과 함께 걸리더라고요. 음, 저도 제 마스터피스를 꿈꾸고 기대하며 기다리던 때가 있었거든요. 실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꿈꾸는 마스터피스가 어떤 모양일지, 무엇으로 완성될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주 많은 이의 인정과 박수,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물, 상 혹은 상금, 어쩌면 이 모든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때로는 그 결과들만을 좇으며 기다리는 일이 꽤 많은 좌절과 실망을 겪게 하더라고요. 결국 지치게 만들고요. 다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그럴 용기는 없으니 그래 좀 쉬자, 조금 쉬는 건 괜찮지, 하는 합리화도 여러 번 했어요.
“매분 매초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결국엔 하지 못하는 거예요. 영화란 매일매일, 그리고 몇 년이 걸리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죠. 제게 남은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20년 정도겠죠. 그렇기에 저는 쉬지 않을 거예요. 계속해서 만들고, 나아갈 거예요.” (코스모폴리탄 8월호, 그레타 거윅 인터뷰 중)
제가 살핀 여러 말과 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입니다. 마스터피스 같은 추상적인 이상이나 결과를 좇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매일매일의 일들에 집중한다는 그레타 거윅의 글을 읽으니 반성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마스터피스란 매일매일에 집중하는 그레타 거윅 같은 이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그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배움을 기쁘게 이어가는 일상에서 제 마스터피스가 완성될 수도 있겠다,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클래식 연주자들에게도 비슷한 표현이 붙곤 하잖아요. 전성기 시절 최고의 연주라며 명반 딱지가 붙기도 하고요. 젊은 시절의 재능을 열심히 굴려 마스터피스를 조금 이르게 만날 수도 있지만, 역시 그 자체로 완성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역사 속 명반으로 머무는 대신 그 빛나는 순간을 계속 굴려 가며 다음 세대에 무수한 영감을 전달하는 훌륭한 연주자들도 많잖아요. 그렇게 삶 자체를 마스터피스로 만드는 이들 말이에요.
마스터피스를 어떤 한순간으로 여기는 대신 아주 오래 걸려 완성되는, 움직이는 무언가라고 생각해본다면 그걸 좇는 과정이, 삶의 꽤 많은 순간이 조금 더 만족스러워질지도 모르겠어요. 두 사람도 마스터피스를 꿈꾸고 기대하나요? 두 사람이 생각하는 마스터피스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이만 글을 마쳐요. 곧 공연이 시작하거든요. 오늘 무대에 오르는 여섯 명의 젊은 음악가들이 각자의 마스터피스를 들려주길 기대하며 저는 이만 객석으로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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