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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잉볼은 티베트의 전통 악기입니다. 말 그대로 노래하는Singing 그릇Bowl이죠. 막대로 가볍게 두드리거나(아우터) 그릇 입구를 문질러서(이너) 소리를 내는데요. 댕- 하고 울리는 음색도, 생각 이상으로 오래가는 잔향도 신기합니다. 싱잉볼은 티베트에서 오랫동안 의식의 일부로 사용돼 왔어요. 명상을 돕는 현재의 쓰임과 비슷하죠. 십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운 악기였는데 이제는 자체 생산해 파는 업체도 생겨났어요. 
음색의 신비로운 느낌은 주파수 변화의 영향이 큽니다. 싱잉볼을 두드리면 사람의 가청 범위인 20Hz에서 20,000Hz 사이의 아주 다양한 주파수가 발생한다고 해요. 아주 다양한 진동이 공존한다는 뜻이죠. 싱잉볼을 울리면 이러한 진동들이 동시에 발생합니다. 그 가운데 2,500Hz 정도의 고주파는 금세 사라지고 진동이 적은 1,000Hz 이하의 중·저주파수가 남게 되죠. 이 잔향은 소리가 귀에 바로 꽂히는 고음역대에 비해 몸을 감싸는 느낌의 편안함을 주죠. 그런데 잔향은 하나의 음으로 지속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우-잉 우-잉 하면서 일렁이는 들려요. 피부가 함께 떨리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싱잉볼의 신기한 울림의 비밀은 ‘주파수 변화’입니다. 이 주파수 변화를 ‘맥놀이’라고 불러요. 서로 다른 주파수가 만나 하나의 주파수로 합쳐졌다 헤어지며 소리의 진동 폭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현상이죠. 이 복잡한 설명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맥이 논다’라는 심플하고도 멋진 말로 바꾸었네요. 맥놀이는 절의 종도, 징도, 싱잉볼도 모두 가지고 있어요. 청동으로 음을 울리기 위해 만든 도구니까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은 당연합니다. 맥놀이의 범위는 종이나 징에 비해 싱잉볼의 것이 훨씬 넓습니다. 작고 오목한 그릇 형태가 주파수가 섞이도록 돕거든요. 특히 싱잉볼 입구를 문지르며 음을 낼 경우 연주자가 그 세기를 강하거나 약하게, 거칠거나 부드럽게 조절하게 되는데요. 이미 폭넓은 주파수를 가진 몸체에 연주법에 따라 더욱 다양한 진동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맥놀이가 피부로 전달되는 낮은 진동(저주파)과 합쳐져 우리가 흔히 느끼는 신비로움, 몸의 편안함, 나아가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다만 맥놀이가 뇌파에 자극을 준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지 뇌파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 어떤 방식으로 몸을 이완하는지에 대한 연구 데이터는 확실하지 않아,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맥놀이가 물리적인 현상이라면, 명상계에서는 ‘동조 현상’이라는 영적인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구의 물체는 각자의 고유한 진동을 가지고 있으며 각 물체가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진동수를 맞춰나간다는 것인데요. 싱잉볼이 가진 느리고 풍부한 진동이 우리 몸의 세포와 에너지 층에 전달이 되어 육체의 진동과 ‘동기화’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역시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소음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오롯이 자연의 금속에서 비롯한 울림을 듣고, 느끼는 행위가 편안함을 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특히 명상이나 요가를 하고 나면 몸의 근육들이 이완되죠. 이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기보다 직접 자연으로부터 비롯한 ‘생’ 음악을 들을 때 (혹은 ‘생’ 진동을 느낄 때) 우리의 몸과 귀의 안정감이 극대화될 것 같네요. 

그러므로 싱잉볼의 효과에 관한 이야기들은 싱잉볼의 재료와 주파수 변화가 주는 편안함에, 싱잉볼이 연주되는 장소의 분위기, 그 효과를 얼마나 믿느냐에 대한 개인의 믿음이 더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무형의 효과들을 제외하고 보면, 꼭 싱잉볼을 고집하지 않아도 놋그릇만으로도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놋그릇 역시 같은 재료로부터 비롯한 음색과 맥놀이 현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구리의 연하고 부드러운 저음과 주석의 단단함, 수많은 망치질이 만들어내는 단단한 강도! 더군다나 방짜 기법으로 만들어진 좋은 유기의 경우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청아한 소리가 납니다. 잔향이 풍부한 맑은 놋소리가 오목한 그릇에 모여 울리며 맥놀이 현상도 일어납니다. 한정식 집에 간다면, 혹은 제사가 끝난 뒤에 빈 놋그릇을 놋젓가락으로 한 번 두드려 보시겠어요. 작게 두드려도 됩니다. 그리고 그 울림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음색이 어떻게 미묘하게 바뀌는지 한 번 들어볼까요. 물을 담는다면 파동의 변화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악기가 될 수 있는 도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쓰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할 뿐이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이며, 도구의 재료는 결국 자연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