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는 왜 편안할까?
바닷가에 사니 좋긴 좋군요. 뻥 뚫린 하늘과 바다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해변가로 달려나가 벌러덩 누워 버려요. 그리곤 파도 소리를 듣죠. 쏴아아- 쏴아아- 규칙적으로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들. 끝없는 너울이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해요. 평생 내륙에 살다 이제 막 바닷가에 정착한 저와 달리, 남편은 태생이 바다 사람입니다. 바다는 지겹다며 얼씬도 않죠. 대신 빗소리가 좋대요. 토독 토독, 마음이 편안해진다나요.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남편은 놓칠 세라 발코니 문을 활짝 열어놓고 빗소리를 들어요.
좋아하는 것들이 참 달라보였는데, 저도 남편도 좋아하는 소리가 ‘물소리’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파도 소리나 빗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더라고요. 물이 무언가에 부딪혀 나는 소리였어요. 정확히는 물이 ‘어떤 물체’에 ‘어떤 강도’로 닿느냐로 결정되는 소리죠. 일상 속의 물소리를 떠올려볼까요. 물을 따르고, 샤워를 하고, 청소를 하고, 꽃에 물을 주는 소리… 그렇습니다. 모두 다르죠. 오늘 이야기할 ‘빗소리’와 ‘파도 소리’의 안정감 역시 물을 둘러싼 환경에서 오는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왜 파도 소리와 빗소리에 편안함을 느낄까요?
파도는 크게 물이 단단한 물체(절벽이나 바위 등)에 부딪히며 일어나는 파도와, 모래사장에 밀려오는 파도로 나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파도 소리는 무엇인가요? 저는 해변가의 파도 소리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물’과 ‘모래’가 만나는 소리죠. 물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며 모래를 밀어내면, 쏴아아- 비슷한 크기와 강도의 모래 알갱이가 쓸리며 서로 부딪히죠. 모래는 다시 빨려내려가며 스으으 뒤로 굴러갑니다. 귀를 거스르지 않는 작디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모여 파도 소리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다면 빗소리는요? 빗소리 역시 물소리가 전부가 아니죠. 서로 다른 무게의 빗방울이 각자의 속도로, 서로 다른 물체에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입니다. 때문에 어떠한 소리로도 변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저희집의 조그만 발코니에 비가 올 때면, 철제 난간, 타일 바닥, 나무 팔레트, 토기 그리고 식물들의 잎 위로 떨어지는 다양한 소리가 들립니다. 아주 자그만 소음합주단이랄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 통틀어 빗소리로 인식합니다. 셀수없는 빗방울들이 비슷한 힘으로 연속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일정한 크기의 소리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역시, ‘신호’로 인식할 만한 일정한 패턴은 없죠.
파도 소리와 빗소리가 편안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불규칙성’입니다. 일정한 크기나 뉘앙스는 있지만, 소리가 정확하게 규칙적이지 않아요. 규칙적인 소리는 긴장을 일으킵니다.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면 뇌가 그 소리를 일정한 ‘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종소리가 있죠. 12시 종을 떠올려 볼까요. 12시가 무서운 이유도 12시에 울리는 종소리가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예요. 생상스가 작곡한 ‘죽음의 무도’를 들어보면, 아무 반주 없이 하프가 ‘레’음을 반복하며 시작합니다. 분명 아름답고 우아한 하프 현 소리인데 12번 같은 음을 연주하니 마냥 그렇지만은 않네요.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더 끔찍한 예로는 영화 ‘사이코’의 반복음이 있답니다!) 시계의 똑딱똑딱 소리도 긴장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패턴을 따라갈 수 없는 불규칙한 소리는 배경음으로 남게 되죠. 같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라도 사람이 일정하게 두드리는 것과, 처마의 풍경 소리가 바람에 의해 부딪히는 것은 느낌이 다르듯이요.
이렇듯 일정한 패턴이 없지만, 일정한 범위 속에서 반복되며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소리. 이 불규칙한 소리 패턴을 ‘백색소음’이라 부릅니다. 백색 소음 중에서도 빗소리와 파도 소리와 같이 작거나 낮은 음(저주파)이 모인 소리에서 우리 뇌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백색소음은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차소리, 사람소리 등 여러 소음을 가려주는 역할도 합니다. 일상을 넘어, 산업적으로도 사용됩니다. 실제로 바다 위에 풍력 발전기를 짓는 이유 중 하나는, 내륙에서 소음 공해를 일으키는 발전기의 터빈 소리가 해상에서는 파도 소리에 가려져 해결되기 때문이랍니다.
파도 소리를 모방한 오션 드럼 소리를 보내드릴게요! 오션 드럼은 프랑스의 현대 작곡가 메시앙(원어, 생몰)이 자신의 작품Des canyons aux étoiles… 속에 특수한 효과를 내기 위해 발명한 악기예요. 북과 같은 넓적한 원통에 둥근 알갱이들을 넣어 굴려가며 소리를 내죠. 레인 스틱은 남아메리카에서 기원한 전통 악기로,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연주했다고 해요. 여러 알갱이를 넣은 긴 나무 원통을 눕힌 상태에서 천천히 세우면서 연주합니다. 가벼운 내용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하며 강약을 조절합니다. 속도에 따라 장대비가 될 수도, 보슬비가 될 수도 있어요.